시니어가 되고 나서 보니

easylogic
5 min readJun 13,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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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니어 시절에는

세상 모든 것을 할 수 있을 줄 알았지만
기획이나 디자인이 없으면
시작도 못하는 나를 보고
한참 헤매이던 시절이 있었지.

사실 아무것도 못하는 거였음.

주니어 시절에는

시니어들은 왜 저렇게 아무것도 안 하고 있나.

현실만 보내고 있나 고민을 많이 했는데
나이 들고 나서 보니 사실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더라고.

회사는 혼자 돌아갈 수 있는게 아니더라고.
안하는게 아니고 할 수 있는 환경이 안 됐던거지

생각을 해봐.

하루 일정이 회의로 가득 차 있는데
누군들 개발을 하고 싶겠어?

주니어 시절에는

지금 놀아도 시간이 많은 줄 알았어..
그래서 나중에 할 수 있는게 많이 생기면 그 때 하려고 했지.

그런데 지나고 나서 보니 내가 의도적으로 하지 못했던 것들은 머리 속에 안 남더라고.
제일 큰 문제는 이걸 나중에 깨달을 때는 이미 늦었단거야.

누가 그랬지.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진짜 늦은 거라고.

맞는 것 같음.
시간은 나를 기다려 주지 않음.

시니어가 되고 나서 보니

사실 나는 아직 개발이 더 좋고
이제서야 많은 걸 할 수 있게 됐는데
개발 말고 다른 일이 계속 주어지더라고.
그래서 지금은 사실 개발을 잘 못하게 되어 가고 있어.
의도적으로 시간을 내고 싶지만
이미 가족과 책임져야 하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그러기도 쉽지 않아.

시니어가 되고 나서 보니

알고 있는게 많은게 가끔 허들이 될 수 있어.
알고 있다는건 지금 바로 시작 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인데.
사실 안되는 것만 알고 있고 된다는 걸 잘 인지를 못해.

시니어가 되고 나서 보니

할 수 있는게 많아 졌단 사실이 가끔 부담이 돼.
모른 다고 하기에도 그렇고
그렇다고 잘 한다고 하기에도 그렇고.
상당히 모순적인 존재가 되어 가지.
그 사실 자체를 인정하면 좀 나은데
그게 참 어렵더라고.
내가 못 한다고 이야기 해야하잖아.
사실 개발자 중에 나는 이런거 못합니다 라고 이야기 할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을꺼야.
회사를 나갈 각오를 하지 않는 이상은…

시니어가 되고 나서 보니

그렇게 시간이 흐르다 보니 어느새 15년 정도 됐는데
사실 아직 그냥 막 코딩하는게 좋고
법칙이나 디자인 패턴 같은건 잘 눈에 안 들어와.
보통은 그 흐름에 맞게 뭔가를 익히지만
난 예전부터 관심있는 것만 파다보니 항상 흐름이랑 반대로 갔어.
혼자서 열심히 오픈소스 해보는 것도
나만의 방식을 찾아보고 싶어서 인 것도 있고.
과연 답이 하나일까에 대한 궁금증도 있고.
저 사람이 만든 것과 내가 만든 것을 비교 하면서 코딩 하는 재미도 있고.
그냥 재밌는게 많아.

시니어가 되고 나서 보니

아직까지는 그냥 개발자가 맞는 것 같아.
나도 언젠가는 언어를 만들어 볼 수 있지 않을까?
OS 를 만들어 볼 수 있지 않을까?
고민도 해보고
나만의 방식을 강요하는게 아니라 전 세계 인구만큼 방식이 많아 졌으면 하기도 하고
세상은 하나의 알고리즘으로 발전하는 아니니깐
서로 각자가 원하는 형태로 막 코딩 했으면 하기도 하고
생각하다보니 개발은 각자의 방식을 서로에게 알려주면서 하는 것 같아.

시니어가 되고 나서 보니

가끔 개발자라는 직업을 창의적인 직업이라고 하지만
사업을 처음부터 설계하고 만들지 않은 이상은 그런 사람은 거의 없는 것 같아.
그 저 주어진 환경에 주어진 목표를 잘 수행하면 되는거지.
그게 나쁜게 아니란 것도 알았어.
그런 사람들도 두근거리는 목표를 받으면 충분히 잘 할 수 있거든.
그래서 내가 잘난 사람인지 아닌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아.

시니어가 되고 나서 보니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중에 하나가 개발은 항상 완성을 향해나가는 과정에 있는 거지.
완료를 목표로 가면 안된다는 것도 알았어.
그래서 가끔은 목표를 바꾸고 포기할때도 많으니 당연하게 생각하면 마음이 좀 편해지기도 해.
시작한지 3개월된 사업을 접을 수도 있고,
2개월만에 오픈하기로 한 사이트가 알수 없는 이슈로 일년뒤에 오픈할 수도 있고
무수히 많은 일들이 일어나는데 그 사실에 개발자가 개입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단 것도 알았어.

왜나하면 개발자는 사업의 주체가 아니니깐.
그 어디도 개발 잘 해서 사업이 잘 됐어요 라고는 못 들어 봤어.

시니어가 되고 나서 보니

개발 잘하는 사람들만 모여 있어도 안되는 곳도 많아서.
개발조직 장이 엄청 잘 해도 사업이 잘 안되면 말짱 꽝이니깐.
그래서 이제는 시니어도 아니고 주니어도 아닌 사람이 되기로 했어.
할 수 있는 만큼 코딩하고 할 수 있는 만큼 재밌게 살아야지.

디자인 패턴 하나에 너무 몰두 하지 않고
테스트 코드 하나에 벌벌 떨지 않고
내가 틀려도 너무 기죽지 말고
또 다른 방법을 찾아보기로 했어.

아쉬운건 손이 조금 아프단 것과
점점 나이가 들어감에 체력이 떨어지는건데
이건 그 동안 익혀온 것들을 잘 쌓아두면 좀 낫지 않을까 해.

20년만 더 쌓아봐야지.
그 때는 그 때의 일들이 있을테니.

ps.

15년전에 나에게 한 마디 하자면

세상 모든 것을 해보기도 하고 하나를 죽 파기도 해보고
그렇게 하다 보면 너만의 길이 보일테니 즐겁게 해.

다만 말로 남겨두는 것보다 코드로 뭔가를 남겨줬으면 좋겠어.

말은 사라지지만 코드는 디지털 세상에서 말 보다 더 오래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아.
그때 언어를 하나 만들었으면 지금쯤 제대로 된걸 하나 만들었을지도 모르니.
(그리고 국,영,수 는 필수로 해야한다고 꼭 꼭 이야기 하고 싶다)

15년 후에 나에게 한 마디 하자면

지금처럼 맘 껏 코딩 할 수 있게 체력도 좀 길러놓고 손도 안 아팠으면 좋겠어.
그러니 자기 관리를 좀 열심히 해봐.
너무 책상 앞에만 앉아있지 말고.
세상을 좀 더 즐겨.
(그리고 너의 꿈을 버리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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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easylogic

걸작을 만드는 사람. 에디터를 만드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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